snowball project
가격은 얼마가 적당할까?
우여곡절 끝에 상세페이지가 어느 정도 모습을 갖추고 나니 이제 다음 질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얼마에 어떻게 팔 것인가.’
결국 셀러도우미의 위치는 ‘저가 엑셀 템플릿과 고가 ERP 사이 어딘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챗지피티가 제안해준 몇 가지 가격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19,000원.
24,900원.
29,000원.
그리고 AI의 제안대로 ‘처음 시장에 내놓을 때는 19,000원의 출시 가격으로 시작, 제품이 검증되면 24,900원, 이후 29,000원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어서(?) 가격을 높게 잡는게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AI의 판단은 의외로 단호했습니다. 가격을 너무 낮게 잡으면 오히려 제품의 가치까지 낮아 보일 수 있으므로 제품의 기능에 걸맞는 상대적 가격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품의 가치를 처음부터 낮게 잡기보다는, 아직 후기 하나 없는 상품을 처음 구매하는 사람의 부담을 출시 가격으로 낮춰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첫 10건 정도의 판매를 목표로 실제 구매자들의 반응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구매자들이 어떤 기능을 유용하게 생각하는지, 어디에서 사용이 어렵다고 느끼는지, 어떤 질문을 하는지 살펴본 뒤 파일과 사용가이드, 상세페이지를 다시 한 번 개선하고 가격도 재검토할 생각입니다. 반응이 좋고 제품의 가치가 충분히 검증된다면 그 이후에는 가격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가격을 정하기보다는,
19,000원 → 첫 10명의 고객 → 피드백 → 제품 개선 → 가격 재설정
이런 식으로 시장에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셀러도우미를 만드는 과정 대부분이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답을 알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단 하나를 만들고, 확인하고, 고치고, 다시 만들어왔습니다. 가격 역시 그렇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V7이 아니라 ‘셀러도우미’
그동안 제품을 만들면서는 버전명을 썼었습니다. V5, V6, V7처럼 버전을 나누면 어떤 파일이 최신인지 관리하기 편했습니다. 하지만 구매자에게 V7이라는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품 등록을 위해 내부 개발 버전명을 지우고,
셀러도우미
로 하기로 했습니다. 다소 흔한 이름 느낌이 나지만 직관적이고 쉽게 기억될 수 있을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클로드의 제안으로 KIPRIS라는 지식재산정보 검색 서비스를 이용해 보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명칭이 있는지 검색해본 뒤 상품명을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파는가
상품등록을 준비하며 제품을 어떤 카테고리로 설명할 것인지도 고민했습니다. 가장 간단하게는 ‘재고관리 엑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정의하면 수많은 재고관리 양식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셀러도우미가 만들려고 했던 흐름은 조금 달랐습니다.
얼마에 판매해야 하는지 보고, 실제로 얼마가 남았는지 확인하고, 돈이 제대로 정산됐는지 보고,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 뒤, 언제 다시 주문할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재고관리가 아니라
온라인 셀러의 판매·마진·정산·재고·재발주를 연결해주는 관리 도구로 설명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판매량이 어느 정도 생겼지만 ERP를 도입하기에는 아직 부담스러운 소규모 셀러를 주요 사용자로 생각했습니다. 제품을 만들 때보다 상품을 등록하려고 할 때 타깃이 훨씬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파일 하나가 상품 패키지가 되기까지
처음에는 셀러도우미 파일 하나만 판매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용성을 생각하면서 상품 구성도 바뀌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함께 제공하는 방향으로 정리했습니다.
실제 사용하는 본 파일
예제 데이터가 들어 있는 SAMPLE 파일
별도의 PDF 사용가이드
빈 엑셀 파일을 처음 열었을 때는 어디에 무엇을 입력해야 할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SAMPLE 파일에서 데이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고, 필요할 때 사용가이드를 확인한 다음 본 파일을 사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별도의 PDF 사용가이드를 첨부하는 것이 사용자에게도 좋고 상품 구성도 더 탄탄해진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계획에 없던 별도 사용가이드도 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PDF 사용설명서는 지금까지 작업했던 상세페이지들의 캡처 이미지와 셀러도우미 파일 및 샘플파일을 클로드에게 첨부시키고 사용자가 보고 따라할 수 있는 사용설명서를 12~13 페이지 내외로 작성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상세페이지 내용을 살려서 그럴듯한 사용설명서를 만들어주었는데, 단순히 각 시트의 기능을 나열하는 방식보다는 실제 사용 순서를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입력해야 하는 항목과 자동으로 계산되는 영역을 구분하고,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 자주 헷갈릴 만한 부분과 주의사항도 함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생각지 못한 상품구성이었지만 AI의 조언 덕분에 엑셀 파일 하나가 판매할 수 있는 패키지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정말 팔 준비가 된 걸까?
처음 셀러도우미를 만들 때 제가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가?”
그런데 상세페이지와 상품등록을 준비하면서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판매 페이지에 쓰는 이 문장을 실제 제품이 증명할 수 있는가?”
돌이켜보면 이번 판매 준비 과정은 내가 만든 파일을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11개의 시트를 가진 엑셀 파일을 만들고, 그중 핵심 화면을 골라내고, 22개의 상세페이지 섹션으로 나누고, 200개의 상품과 3,000건의 판매기록을 관리할 수 있다는 숫자를 다시 확인하고, 마지막에는 얼마에 팔 것인지까지 고민했습니다.
상품 하나를 만든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고 나니 처음과는 분명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컴퓨터 안에 있는 엑셀 파일 하나였습니다. 이제는 이름도 생겼고, 가격도 고민했고, 누구를 위한 상품인지도 조금씩 선명해졌고, 그 가치를 설명하는 상세페이지까지 만들어졌습니다. 파일이 비로소 상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 할 일은 하나였습니다.
실제로 시장에 올려보는 것.
어디에서 팔 것인가
드디어 준비한 셀러도우미를 크몽에 상품등록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크몽이라는 채널을 사용하기로 한 것은 ChatGPT와 Gemini, Claude에게 각각 어떤 판매처를 이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게 좋을지 물어본 결과로 정하였습니다.
여기서 재미있었던 점은 판매채널을 정하는 과정에서 AI의 답변이 엇갈렸다는 것입니다. Gemini는 크몽과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동시 판매를 추천했지만, 디지털 상품 판매 방식에 대한 설명이 복잡했습니다. ChatGPT는 일단 크몽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다고 했고, Claude는 네이버에서도 조건에 따라 배송 없이 디지털 상품 판매가 가능할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네이버 고객센터에 문의해보니 조건에 따라 ‘배송없음’ 판매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AI의 답변은 출발점이지, 최종 확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
중요한 결정일수록 직접 확인하거나 여러 출처를 크로스체크해야 했습니다.
크몽 등록 버튼을 누르다
결론적으로 크몽에서는 19,000원의 출시 가격으로 시작하고, 후기와 판매 실적이 쌓이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로 판매채널을 넓히고, 그 시점에 24,900원 정도로 가격을 조정하는 방안을 생각했습니다.
크몽에서 상품을 등록하려면 먼저 전문가로서 프로필을 설정해야 했습니다. 자기소개를 하고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경력이나 자격증, 학력사항 등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것들을 게시해야 했습니다. 저는 챗지피티가 추천해주는 대로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입력하고 포트폴리오는 ‘셀러도우미’로 꾸몄습니다. 나머지 사항은 역시 제안대로 입력하지 않았습니다.
상품명을 입력하고, 카테고리를 고르고, 판매가격 19,000원을 입력했습니다. 그리고 썸네일도 등록하고 그동안 만들어둔 상세페이지 이미지도 하나씩 등록하였습니다. 상세페이지는 업로드 규격이 있어서 하나의 이미지가 세로 3,000px 이상이 되면 안 되고 총 이미지 수는 9장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이 규격과 이미지 수를 맞추느라 피그마에서 다시 상세페이지를 자르고 붙이는 편집을 거쳤습니다.
그리고 조금 신경을 더 썼던 부분은 FAQ였습니다. 분명히 출시 이후에 문의가 많이 있을 텐데, 그런 CS를 조금이라도 사전에 줄이고자 예상되는 FAQ를 가급적 많이 남기고 싶었습니다. 클로드가 뽑아준 FAQ에서 “Mac에서도 사용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 신선해서 왜 이런 질문이 나오는지 찾아봤습니다. 제가 Mac 제품을 안 써봐서 몰랐는데 macOS에서는 VBA(Visual Basic for Application)나 매크로가 있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이런 질문이 종종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늦게라도 상품 설명 FAQ에 넣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주 동안 수도 없이 보았던 셀러도우미인데도 실제 판매 사이트에 상품으로 등록하다 보니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19,000원을 내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낄까?’, ‘혹시 내가 놓친 것은 없을까?’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검토하고 다듬기보다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부족하다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검토할 만큼 검토했고 이제는 더 가지고 있기보다 실제 사용자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늘, 상품등록 신청의 마지막 버튼까지 끝마쳤고 이제 처음으로 제작해본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시장의 시간
아직 판매가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상품등록 심사가 남아 있고, 심사를 통과해서 실제로 상품이 노출된다고 해도 과연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첫 판매까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제 컴퓨터 안에 있던 엑셀 파일 하나였습니다. 이제는 이름이 생겼고, 기능을 설명하는 상세페이지가 생겼고, SAMPLE 파일과 사용가이드가 생겼고, 가격표까지 붙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판매 사이트에 등록 신청까지 했습니다.
파일이 비로소 시장에 나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번 Snowball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제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AI를 이용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까?’ 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궁금했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AI를 이용해 아이디어 하나를 실제 상품으로 만들고, 시장까지 가져갈 수 있는가?
적어도 첫 번째 질문에는 이제 작은 답을 하나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능했습니다.
물론 훨씬 중요한 질문은 이제부터입니다.
누군가 정말 이 상품을 필요로 할까?
그리고 실제로 돈을 내고 살까?
출시가는 19,000원.
우선 첫 번째 목표는 10명의 고객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10명이 셀러도우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지켜보고,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제품의 가치를 확인한 뒤 다음 가격을 결정할 생각입니다.
만드는 일은 거의 끝났습니다.
이제부터는 파는 일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가, 진짜 시장 실험입니다.